독립애니메이션, 변화가 필요하다!
 
 
 

1. 독립단편애니메이션의 형성

     지금도 그렇지만 적어도 90년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에서 애니메이션은 철저하게 어린이 대상의 오락산업이었고, 하청주문생산에 의한 수출상품이었다. 20여년에 걸쳐 형성된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할 때 자기표현으로서의 예술과, 국가나 민족 정체성으로서의 문화 범주에 앞서서 자본주의 산업의 틀 안으로 접근하게 하는 편향을 낳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양자의 결합이고, 결합의 주도력이다. S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오래된 꿈>(연출:김현주/5분 17초/16mm/1994)등 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독립단편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부분 자기표현의 예술적 형식이었다는 점이다. 즉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목적의식성이나, 배급을 위한 스타일 구축 등의 문제가 상업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풋풋하고 진지한 자기실험의 결과들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첫 단추를 형성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의 출발이 개인의 예술적 표현형식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90년대 중반 이후 독립애니메이션 자체의 변화발전에 여러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대부분의 독립애니메이션이 '개인'의 '단편'이라는 점이다.
     국가와 민족, 계급과 계층에 따라 독립영화는 여러가지 형태로 개념화되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공통성과 정신을 함유하게 된다. 필자는 그것을 저항과 실험 그리고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영화의 사회적 의미는 이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의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와 결합되어 다양한 정신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한국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이 형성되기 시작한 최고의 의미는 우선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이었다는 점에 있다고 여겨진다. 현재 '조직'을 표방하는 독립애니메이션 창작그룹이 일정정도 형성되어 있으나, 각 그룹들의 예술노선에서 구체성이나 차별성을 발견하기 힘들고, 작품의 제작도 대부분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낡은 감수성에 사로잡힌 조직의 개인 보다는 오히려 이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이 독립애니메이션에서 더욱 중요한 유기적 세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익단체로 예술조직이 변질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은 여전히 기존의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적 실험에 있고, '개인적인' 차원의 사회적 극복에 있다.

2. 독립애니메이션의 현황

     98년에 이르러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그중 가장 커다란 변화는 아마도 '단편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으로 제도적인 대중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이제 '개인'의 '단편애니메이션'들도 저작권의 보호를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식 상영료를 내걸며, 시장배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질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돈'의 문제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은 당분간 그 이전과 커다란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독립애니메이션은 '돈'이 되지 않는 작업이고, 폭넓은 대중성을 형성하기 힘든 장르이며, 독립애니메이터들은 작업의 지속을 위해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뭔가 다른 것을 만들거나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기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아니면 잠시 독립작업을 포기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곳에서 일을 해야한다.
     어떤 독립영화단체도 자신들의 작품을 상영할 때, 제작비 마련을 위해 만들어 납품한 ' 웨딩비디오'나 '홍보비디오'를 '작품'으로 상영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웨딩비디오'는 자신들의 예술노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의 몇몇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는 이들이 같이 상영되고는 한다. 뭔가 이상하다.
     필자는 독립영화에 대한 국가나 자본측의 온당한 지원(그나마도 단편영화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이 부족한 현실에서 독립영화작가들이 좀더 많은 '웨딩비디오'를 좀더 비싸게 받고 만들어 좀더 우수한 작업조건을 형성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혼동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독립적인 영화와 '웨딩비디오'는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니던가?
     한편 단편애니메이션이라고 개념화하는 것과 독립애니메이션이라고 개념화하는 것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필자는 어느 한 쪽 개념이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묘할 뿐만 아니라 매우 커다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애니메이션은 단편, 중편, 장편을 포괄하며 좀더 근본적으로는 상업주의를 반대하며 동시에 상업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현재 '단편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으로 시도되고 있는 제도적인 대중화는 대단히 긍정적인 것이지만, 그리고 여기에는 독립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단편애니메이션'들이 대중화의 문제에서 '준비되지 않은' 작품들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기서 준비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의미는 작품들이 함량미달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은 제도적인 대중화라기 보다는 역시 자기표현의 예술적 실험이었다는 점이다.
     예술행위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개념을 벗어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예술작품이 상품화되는 것은 피할수 없는 비극적 운명이지만 처음부터 '상품'으로 만드는 것과, '예술작품'으로 창작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은 후자의 동기에서 출발했고, 그렇기 때문에 감히 '독립'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상품'으로의 전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란 말인가?
     다시한번 문제는 양자간의 결합이고, 주도력이다.

3. 독립애니메이션의 재개념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의 재개념화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 사회는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개념화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못한 데다가, 독립영화의 한국적 모델과 지향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채 각개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역시 중요한 것은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다른 단계의 변화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동안 SICAF, 동아LG 페스티벌, 춘천만화축제 등 몇몇 대규모 행사는 독립애니메이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되었지만, 이러한 이벤트들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사자체의 상업적인 성공과 산업과의 연계구조 창출이기 때문에 이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독립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한 특화된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이벤트의 시상제도에서 수상하는 것이 소위 '작가주의'를 확인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독립애니메이션은 자기표현의 예술적 형식이라는 1차 조건과 함께 '독립적인' 대중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립애니메이션의 재개념화가 새삼스럽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애니메이션이 '독립'의 개념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의 독립애니메이션이 '기존' 애니메이션에 대해 분명한 대안적(alternative)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상업주의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이라는 1차 조건은 창출해냈고 주류에 편승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한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이 '독립'의 범주에서 작업될 때 우리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팔릴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는 자기표현과 실험의 퀄리티가 중요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 것인가 보다는 소수라도 볼 사람들에게만 확실하게 보여주면 된다. 이미 문화경쟁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자기확신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문화 개방문제와 관련지어 몇가지 TV 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의 경쟁력이 다양성과 표현자유에 기반한 독립예술 혹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기반하고 있음을 새롭게 확인 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단관극장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은 이미 독립제작의 주체가 되어 있으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주류를 능가하는 상업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 부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이 외국하청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은 그리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특징일 수도 있고, 그 수준도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 않은가? 다만 아시아의 다른 국가로 점차 그 시장마저도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 확보라는 문제와, 독립애니메이션의 질적 성장과 정체성 구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 단계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독립'의 범주에서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지난 5년여 동안 형성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은 소수 집단과 소수 대중의 문화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얻을 수는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자체적인 상영과 배급을 통해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독립애니메이션이라고 외부로부터 불리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념을 창출하는 일이며, 진행형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고 다양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애니메이션은 힘을 모으는 일 못지 않게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애매하게 하나로 묶여지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종합선물세트를 항상 진열장에 대기시키는 것은 분명 장사에서도 잘못하는 것이다. 그쯤되면 독립애니메이션에서도 진보주의에 기반한 대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98.10.13 / 전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