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분을 만들며 정성들여 화초를 키우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손'이 나타나 화분을 망가뜨리고 '손'을 만들도록 강요한다. 주인공은 '손'을 집 밖으로 쫓아내지만 다시 나타난 '손'에게 묶여 새 장에 갇힌 채 강제로 '손'을 조각하게 된다. '손'을 다 만든 주인공에게는 면류관과 훈장이 주어지지만 주인공은 이를 거부하고 새장을 탈출하지만.....

1965년 안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핸드>는 체코 퍼핏 애니메이션의 대가 이리 트른카(Jiri Trnka) 감독의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 40여 편에 달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1984년 미국영화아카데미는 <핸드>를 '역사상 5번째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체코 내에서는 <핸드>의 전체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풍자로 인해 정부 당국에 의해 필름이 압수되고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12년 태어난 이리 트른카는 어려서부터 수공예에 재능을 보이면서 체코 인형극의 대가로 불리우는 요셉 스쿠바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인형극의 기본 연출과 체코 인형극의 전통을 물려받았으며, 인형극단을 창설하여 활동하기도 했고, 신문만화와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그림을 그렸다.

이리 트른카는 1945년 드로잉 애니메이션 <Grandpa Planted a Beet>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The Animals and the People of Petrov>(1946)로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The Czecho Year>(1947), <A Treasury of Fairy-tales>(1947)을 통해 본격적인 퍼핏 애니메이션 예술의 세계로 접어들었으며,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한 첫 번째 장편 <The Emperor's Nightingale>(1948)로 그의 퍼핏 애니메이션은 한층 발전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세익스피어의 희극을 원작으로 한 장편 <The Midsummer Night's Dream>(1959), 오버하우젠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 <Passion>(1961), 로봇 할머니에 의해 양육되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The Cybernetic Grandmother>(1962) 등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체코 퍼핏 애니메이션의 현대적 전통과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핸드>는 인간의 자유의지 또는 예술적 표현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획일주의의 억압을 상징주의적인 표현으로 고발한 이리 트른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작품 속에서 그는 빛과 어둠의 교차, 초현실적인 공간의 활용, 과감한 포토 꼴라주 사용, 그리고 실제 사람의 손을 인형과 함께 등장시키는 등 자신의 창조적인 예술관과 정치의식을 탁월하게 표현하였다.

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지난 2000년 <The Puppet Films of Jiri Trnka>라는 DVD 타이틀로 출시되었으며, 일본판 <이리 트른카의 세계 1, 2, 3> DVD 시리즈도 나와 있다.

2004. 9. 13 / 애니메이툰 51호